2023년 12월 일상 기록 - 당근 튀김 먹으러 나갔다가 베이글만 먹고 왔지요
그러니까 이날 계획 핵심은 당근튀김과 사유의 방에 있다
🐲: 당근튀김이 정말 맛있었다
🐦: 익힌 당근이 맛있을 수 있다니 믿을 수가 없다
🐲: 그렇다면 내가 당근튀김을 사 줄 테니 먹어보아라
이 대화로부터 시작된 약속은
당근튀김을 먹으러 갈 거면 오츠커피도 가자
용산을 가는 거면 국중박 사유의 방을 가 보아야지
용산에도 포비가 있네 당근튀김을 사 준다고 했으니 내가 베이글을 사겠다
그러면 국중박을 갔다가 포비 베이글을 먹고 오츠커피에서 아인슈페너를 마시고 당근튀김을 먹자
이렇게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루트로 진행될 것이었으나…
날이 정말 춥고 집에서 나가고 싶지 않은 비 오는 날이었다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이 액자 같은 건물을 좋아해서
약속을 잡자마자 파란 하늘과 남산타워를 생각했지만
구름이 잔뜩 낀 비 오는 날엔 그냥 하얀 도화지 같은 풍경만 볼 수밖에…
국립중앙박물관은 가끔 특별전 할 때 왔었고
아마 가장 마지막으로 왔었을 때가 아마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품전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R과 함께 왔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땐 에르미타주 소장전도 규모가 꽤 있었고
전시장에 한 번 들어가면 여러 번 둘러보고 나오기 때문에 상설전은 한 곳도 못 보고 나왔었다
가장 오래 또 깊게 남아있는 기억은
고삼 끝나고 학교에서 다 같이 현장학습 갔을 때
어차피 할 일 없는 고삼들 데려다 시간 때우기 하던 때라
대부분 박물관을 잠깐 둘러보고 바로 집에 갔는데
나는 혼자 남아서 특별전도 보고
박물관을 다 돌고 가겠다고 하루 종일 돌다가
결국 문 닫을 때까지 다리 아프게 돌고도 다 못 보고 집에 돌아갔던 기억이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를 보니 오르세미술관이 생각나기도 하고
예전엔 미처 몰랐는데
국립중앙박물관 되게 크고 멋있다
사실 국립중앙박물관은 건물 규모도 굉장히 큰 편이고
상설 전시 유물도 1만여 점이 넘는 세계적으로도 큰 규모의 박물관이다
이번에 국중박을 방문한 목적은 바로 이 사유의 방
어마어마한 규모의 유물을 다 보고 가지는 못 하겠지만
사유의 방에 있는 반가사유상과 달항아리만 보고 가도 좋다는 생각으로 약속을 잡았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사유의 방
국립중앙박물관을 대표하는 국보 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유물인데
예전에 왔을 때도 보고 갔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은 너무 지쳤고
수많은 불상을 보았는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불상은 손이 빠진 거대한 철재 불상뿐…
그래서 사유의 방을 보러 국립중앙박물관 가기로 약속을 잡아놓고
반가사유상을 볼 생각에 꽤 기대가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가사유상 전시는
원래 일반관에서 두 점의 유물을 3개월마다 번갈아가며 전시해 휴식기 및 보존처리 기간을 가졌으나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 단독 전시장인 사유의 방을 만들게 되면서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하나의 전시장에서 한 번에 볼 수 있게 되었다
한 방에서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것도 물론 좋았지만
사진으로 많이 봐서 익숙한 불상의 앞면 외에
뒷면과 옆면까지 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덕분에 섬세하고 유려한 반가사유상의 옷자락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조도가 낮은 아늑한 방은
반가사유상을 관람하기에도 사유를 하기에도 정말 좋다
국중박 이렇게 안내판도 예쁜 거 정말 좋다
역시 굿즈맛집 다운 센스와 디자인👍
겸재 정선의 해인사
특유 화풍과 섬세한 묘사가 돋보였다
진경 산수화로 유명한 겸재 정선의 풍속화
북원수회도
사실 이날은 시간이 많지 않아서
안내 책자에 표시된 주요 소장품만 둘러보고 다음에 또 국중박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전날 시작된 통증에 가까운 가려움증이 전시장을 둘러보는 동안 다시 올라왔고
도저히 관람을 계속할 수가 없어서 결국 그마저도 다 못 보고 나오게 됐다
그래도 달항아리는 꼭 보고 나오고 싶어서
가려움증을 참고 달항아리까지는 보고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 로비에 있는 경천사 십층석탑
R은 처음에 가까인 줄 알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대리석으로 만든 탑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평소 우리가 보던 탑과는 색깔도 모양도 많이 다르니까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서
굿즈맛집 국중박 굿즈를 이것저것 사고 나오고 싶었는데
도저히 실내에서 오래 머물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라
아쉽게도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얼핏 문화의 날인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엔
국중박 굿즈도 할인한다고 들었는데
몸이 좀 회복되면 문화의 날에 다시 가서 전시회도 굿즈도 많이 사 와야지🙃
실외로 나오니 가려움증도 좀 잦아들어서 약속대로 포비에 갔다
하지만 아이파크몰로 들어서니 다시 가려움증이 심해졌고
테라스에 좌석이 많았는데 하필 비가 많이 온 날이라
실외에 자리를 잡을 수도 없었다
박물관에서 출발하면서 약을 먹기도 했고
조금 앉아있다 보니 가려움증이 거의 사라졌는데
나는 이때 그냥 맛있게 베이글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쉬었어야 했다
잠깐 괜찮아진 사이에
미스트와 바디크림이라도 사서 발라야겠다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동을 하며 움직이는 동안 정말 고통스러운 최악의 가려움증이 올라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라
오츠커피와 당근튀김을 포기하고 약속을 파하게 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려움증이 가라앉지 않으면 응급실로 가기로 했는데
다행히 약기운이 점점 돌아서인지 가만히 앉아서 몸의 열기를 식혀서인지
병원에 가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괜히 움직이지 않고 쉬었더라면 조금 더 움직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도 어쨌든 당시는 대처가 미흡할 수밖에 없는 몸 상태였고
그렇게 당근튀김을 얻어먹기로 한 황조롱이는 베이글만 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베이글 포장해서 집으로 간다고 했는데
R도 나도 빈 손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연락을 해온 R이 자기 돈 쓰러 나왔는데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며 웃었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고 가려움증은 해결되었고
당근튀김은 먹지 못 했고
긴장이 슬슬 풀리니까 배도 고파서
참 대단하다 싶겠지만
집으로 돌아온 저는 교촌 레드를 시켜 먹었습니다😘
그리고 약기운이 제대로 돌기 시작하니 잠이 솔솔 와서
잠을 자다가
7시에 알람 소리에 깼는데
그건 바로 캘린더에 저장해 놓은 임영웅 고양 콘서트 티켓팅 알람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서 30분 후에 알람이 다시 울리게 맞춰 두고
40분에 겨우겨우 일어나서
랩탑을 켰더니 배터리가 없고
주섬주섬 어댑터 챙겨서 연결했더니
업데이트 마무리 진행😵💫
정말 급한데 나는 굼뜨고
와이파이 잘 안 터지는 내 방에선 인터파크 진행도 느릿느릿
아 나 아무것도 못 하고 끝나겠구나 생각하면서도
그 와중에 나는 시간 내에 켤 수 있는 창은 다 켜고 휴대폰 어플도 켜두었다
잠에 약에 취해 반응 속도가 느리니
아 늦었다 싶었는데
드디어! 처음으로! 임영웅 콘서트 티켓팅에서 간택을 받아본 황조롱이는
비록 조금 늦게 들어갔으나
예매 대기 창이 딱 한 번만 터진 덕분에 포도알을 보았고
욕심 내서 앞자리로 갔다가 이선좌의 맛을 보고
급히 뒤로 후퇴하여 두 자리를 무사히 따내었습니다
”엄마! 나 임영웅 콘서트 티켓 땄어! “
그렇게 그날 나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 것 같은 가려움을 얻고 당근 튀김을 잃었으나
임영웅 콘서트 티켓을 얻었다
그래 뭐든 얻었으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