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일상 기록 - 만약에 우리가 칼국수를 먹지 않았더라면
미셸 들라크루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연말,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보기에 좋은 전시인 것 같아서
얼리버드로 미리 티켓을 예매해 두고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전시를 보러 다녀왔다
내내 따뜻하다가 갑자기 추워진 때라
날씨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앞이 너무 을씨년스러워서
우리만 관람하러 왔나 싶었는데
전시관 내부에는 사람이 많았다
예매 시간별로 관람인원을 조절하는 것 같았는데
우리는 비교적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대기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전시를 기다리며 그림을 사진으로 보았을 땐
일러스트 작가인 줄 알았는데
그림 대부분이 캔버스나 보드에 그린 아크릴화였다
아, 내가 잘 모르는 풍경의 파리구나
라는 느낌을 가장 먼저 받았다
파리는 오래된 건물을 유지 보수하면서 가꾼 도시라
몇십 년 전의 파리 풍경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나는 여름동안에만 파리에 머물렀던 터라
쨍한 햇빛 아래에서 본 파리의 풍경이 가장 익숙하다
내가 머무는 동안에는 해가 9시는 다 되어야 져서
밤 풍경도 그렇게 익숙하지 않다
벨 에포크는
아름다운 시대라는 뜻으로
기술, 예술 및 문화적으로 번영한 19 세기말에서 20세기 초를 말하는데
낭만주의적이고 낙천적인 분위기가 주를 이루며
특히 프랑스 파리를 문화중심지로서 여긴다고 한다
전후 기술이 발전한 시기가 벨 에포크여서 일까
겨울과 밤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 많다
아무래도 여름보다는 겨울이
낮보다는 밤이
화려한 도시를 파리를 더 잘 보여줄 테니까
작가 미셀은 눈 오는 풍경을 좋아해서
더운 나라에서 작업할 때도 눈 오는 풍경을 그렸다고 했다
나는 명절을 준비하는 나날과 연말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때가 좋다
(크리스마스는 남의 나라 명절이긴 하지만🙃)
아직 전시 기간이 한참 남았지만 그래서 부러
크리스마스가 아직 오기 전에 날을 잡아 전시를 보고 왔다
눈 오는 풍경도 많고
파리의 곳곳의 겨울을 캔버스에 담고 있어서
겨울에 보기 참 좋은 전시다
너무 어렵지 않고 보기 편한 전시라
아이들과 혹은 연인끼리 보러 가기 딱 좋아 보였다
전시장 4번 5번 구역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인데
그림 액자를 제외한 벽면에 계속 눈이 내리는 것 같은 효과를 주었다
쨍한 햇볕 아래 녹음이 짙은 나무 그늘
그 아래 녹색 의자
내가 사랑하는 파리의 낭만은 그곳에 있었서
사실 정말 좋았던 작품은
뤽상부르 공원의 풍경을 담은 그림이었다
주말이면 미술관을 돌다가
뤽상부르 공원에 가서 편지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했던 기억이 난다
겨울 파리 모습을 그림으로 보다 보니
눈 내리는 겨울의 파리도
정말 낭만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머지않은 겨울에
겨울과 노엘을 파리에서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속 어느 한 곳에
아주 어린 시절 즐거웠던 한 때가 추억으로 박혀있는 것처럼
90이 넘은 작가에게도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추억은
유년시절의 소중한 기억이구나
생각했다
전시장에 있는 거의 모든 그림은
미술교사를 은퇴한 후인
노년의 작가 미셸 들라크루아가 그린 그림이지만
그림 속 파리의 모습은 90년 대 초 낭만적인 시절의 모습이고
파리 근교의 풍경은
아버지의 차를 타고 가족과 함께 근교 친척집을 가거나
사냥을 했던 때의 추억이다
미셸은 그림 곳곳에 자신과 강아지 퀸을 표현했다는데
이렇게 전시장에서 눈을 맞으며 뛰어다니는 강아지 퀸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게 쉽지 않아서
처음 몇 장은 퀸의 꼬리만 겨우 찍었다
전시장을 나와서 기념품 샵으로 가기 전에
무료로 볼 수 있는 작은 전시장이 따로 있다
티켓 소지 여부과 관계없이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안내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잘 못 보고 지나치더라
본 전시장에 있는 그림들과 거의 비슷한 풍경을 담고 있는데
이 작은 전시장 안에 있는 작품은 거의 판화다
90년대의 초기 작품은 거의 판화 위주고
그 후의 작품은 아크릴화 위주인데
아크릴화부터 미셸의 작품이 더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작품이지만
아크릴화로 된 작품이 훨씬 더 매력이 있었다
겨울의 파리와 파리의 노엘을 그린 작품이 주라
12월에 보기 참 좋은 전시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조금 늦은 시기인 12월 중순에 전시가 시작돼서
조금 아쉽기도 했다
물론 겨울이면 어느 때나 봐도 좋을 전시지만...
그리고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으로 쓸 엽서를 많이 사고 싶었는데
정말 사고 싶다 이런 느낌의 엽서가 별로 없어서…
두어 장 사고 말았다
전시장 안에서 본 예쁜 크리스마스 풍경이 그렇게나 많은데
엽서는 왜 고를만한 게 없었는지
굿즈는 그게 정말 최선이었을까 싶고…
전시는 생각보다 좋았는데 굿즈 좀 많이 실망이었어
예술의 전당 들어갈 때마다
이 먼지 흡착판 걷는 거 좋아했는데
아리가 나오다가 같은 얘기를 하길래
그래서 우리가 친구지 싶었다🙃
사실 우리는 이날
일찍 만나서 미셸 들라쿠르아 전시를 보고
가는 길에 파이브가이즈를 예약하고
여의도 더현대로 넘어가서 해리의 꿈의 상점을 예약을 걸고 나서
버거를 먹고
프레드 전시를 보기로 했었고
나는 조금 더 일찍 나와서 팀홀튼을 갔다가
자라에서 옷을 살 계획이었는데
전시 전에 팀홀튼을 가는 건 나의 체력이 절대 허하지 않는 일이었고
아침에 일어나서 약속 시간을 착각한
내가 30분 늦어 버려서 (미안🥲)
아리가 배가 고파진 탓에
하필 눈앞에 보이는 앵콜 칼국수에 들어갔다
미슐랭 빕구르망이었던 곳이라고 했는데
갈린 깨가 잔뜩 들어간 칼국수는 텁텁한 데다
수제비는 쫄깃했지만 면이 너무 뚝뚝 끊어져서 실망을 했고
그나마 만두가 맛이 좀 더 나았다
오히려 포장해 온 팥죽은 꽤 진한 편으로 나쁘지 않긴 했는데
옹심이가 별로였다
전반적으로 반죽을 좀 못하는 집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만족스러운 점심을 먹고 나서
여의도로 출발하면서 했던 말인데
우리가 강남 파이브가이즈에가서 버거를 먹고
팀홀튼에서 커피를 마시고
자라에서 쇼핑을 했다면
프레드 전시를 보지는 하겠지만
우리는 행복했을 거야
그리고 그 말은 옳았어
더현대에 도착했을 땐
어차피 해리의 꿈의 상점은 이미 당일 예약이 끝났거든
더현대에 사람 정말 넘치게 많고
파이브가이즈는 예약도 예약이지만 자리 잡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
우리가 칼국수를 먹지 않았더라면
강남 파이브가이즈에 갔다면
우리는 좀 더 편하게 햄버거를 먹었겠지
햄버거를 받고 생각했다
만약 엄마와 여길 왔다면
엄마는 자리 잡기를 거부하고 다른 곳에서 밥을 먹자고 했을 것이고
이렇게 햄버거랑 감자튀김 아무렇게나 넣어 준 포장을 보면서
이런 걸 돈 주고 먹냐고 했을 것이다
이 얘기를 들은 아리도 내 말에 동의를 했다🙃
나는 리틀 치즈버거 올더웨이를 주문했다
쥬시한 육즙에 신선한 채소가 든 햄버거를 맛볼 수 있다고 했는데
솔직히 요즘 어느 버거집을 가든 재료가 신선한 거는 디폴트라서
크게 다른 느낌은 없었고
번, 패티 모두 기대 이하였다
미국에서 파이브가이즈를 먹고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아리가
본토와는 정말 다른 맛이라고 하긴 하더라
감튀가 정말 양이 많다고 들었는데
양이 적어 보여서 사람들이 감튀를 많이 못 먹나보다 했었는데
알고 보니 아리가 주문하면서 감튀를 하나만 시킨 거였고
칼국수를 먹어서 그렇게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둘이서 리틀 하나만 시키니 그럭저럭 양이 맞았다
감튀맛집이라는 말답게 감튀는 맛있었고
베이컨을 넣은 셰이크도 꽤 괜찮았다
그리고 내가 제일 맛있게 먹은 감튀는
두바이 버거킹에서 먹은 감튀였어
야 역시 산유국은 역시 기름이 맛있네 하며 먹었지😁
햄버거 메이트인 나와 아리는 새로 생긴 햄버거집을 항상 같이 가보는데
이제는 우리가 나이를 먹고 체력도 열정도 없어서
오픈하고 한참 있다가 가보긴 했지만
어쨌든 나의 첫 파이브가이즈도 아리와 함께 했고
아직은 쉑쉑버거의 첫맛을 넘지 못한 것 같다가 공통의견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에도 맛있는 수제버거집이 정말 많아
해리의 꿈의 상점은 예약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작년 크리스마스 빌리지가 더 예뻤던 것 같아서
신 포도 못 먹은 여우 같은 생각을 하며 내년을 기약하기로
칼국수의 여파일까
우리는 이미 여의도에 들어서면서 지쳤고
프레드는 너무 늦은 시간에 예약이 돼있었고
버고 먹고 잠시 쉬면서 아리는 졸기까지 했다
전시 예약 시간을 기다리는
빈 시간 동안 자라와 망고에서 쇼핑을 좀 하고
나는 마얘에서 마카롱과 밀푀유를 좀 사려고 했는데
이미 지친 내 눈엔 마얘가 안 보였고
(매장이 없어진 것 같기도 하고...)
1994에서 케이크 하나 포장해 왔다
간 김에 이것저것 좀 포장해오고 싶었는데
너무 지쳐버렸어…🫠
아무튼 지하에서 최대한 쉴 수 있을 만큼 앉아있다가 전시 시간에 딱 맞춰 올라갔다
라피스라쥴리
예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금만큼 귀하다는 청색돌, 청금석
라피스라쥴리를 왜 청금석이라고 불렀는지 알 것 같다
이렇게 디자인 스케치 보는 거 정말 좋아해
실물이 스케치를 정말 잘 구연해내고 있었다
프레드 전시 사실 큰 기대는 없었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화려하고 예쁜 보석이 사진에 잘 안 담기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작은 보석을 전시하는 전시장이라서 그런지
전시장 곳곳에 경호원으로 보이는 분들이 많더라
훤칠한 분들이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가장 눈에 띄었던 옐로우 다이아몬드 목걸이
실물이 정말 반짝반짝 예뻤다
솔레이도르
황금빛 태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옐로우 다이아몬드는
무려 101.57 캐럿이다
전시장 들어가자마자 볼 수 있는 건데
우리는 이 어마어마한 보석을 미처 보지 못하고 건너뛰어서
전시를 다 보고 나서 다시 보러 돌아왔다
나는 보통 전시를 보러 가면 세 번 정도는 보고 나오기 때문에
앞쪽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닌데
아무래도 작은 보석류를 전시한 곳이어서
곳곳에 계신 경호원 분들이
다시 전시를 보러 가는지 몇 번 물어보셨다
어렸을 때 까르띠에와 티파니앤코 전시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비슷한 시기에 했던 전시로 기억한다)
내 기억에는 까르띠에 전시가 유독 많이 남아있고
까르띠에와 티파니앤코 모두 이렇게 커다랗고 상징적인 보석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는데
프레드 역시 옐로우 다이아몬드인 솔레이도르를 가지고 있다
처음 커팅 했을 당시는 105.54 캐럿이었고
커팅된 다이아몬드 중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였다고 한다
다시 다듬어진 현재는 101.57 캐럿이고
개인 소장으로 가지고 있던 솔레이도를
프레드가 재매입했다고 한다
정말 정말 영롱한 보석인데 그 모습이 사진에 담기지 않아 너무 아쉽다
우리가 칼국수를 먹지 않았더라면
좀 더 편하게 햄버거를 먹고 좀 더 수월하게 돌아다녔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칼국수를 먹은 덕에
결국 더 현대 서울을 갔고
그 덕에 이렇게 아름다운 보석을 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