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할머니께 보내는 편지

🗂️/📄

by KESTRELLA 2025. 6. 9. 18:19

본문

반응형

할머니께 보내는 편지
2022년 4월 씀


나는 태어나길 게으른 사람이다.
매일매일 일기 쓰듯 블로그를 올리겠다고 수 없이 다짐을 했어도 며칠 반짝 포스팅을 하고는 금세 잊어버린다.

연초에 문득 고 김자옥 님의 영정사진이 떠올랐다. 인물 사진을 잘 찍는다는 촬영 스태프가 갑작스럽게 찍어주었다는 사진, 김자옥 님이 빨간 담요를 두르고 해사하게 웃는 사진을 떠올리며 나는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생각했다.

공개된 곳에 나의 신상을 암시할만한 글을 쓰기를 꺼렸지만 이제는 그 강박에서도 조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날 바로 기억의 조각을 대충 적어놓았는데
글쓰기를 미처 다 마무리하지 못하고 그냥 흐지부지 미뤄두었다.
내 블로그에는 워낙 그런 글이 많다. 나중에 올리겠다고 대충 휘갈겨 놓았다가 예약한 시간이 지나도록 고쳐 놓지 않아서 두서없는 낙서 같은 글이 올라오면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고 비공개로 돌려놓는다. 그런 글은 보통 잊힌 채로 묻힌다.

그러다가 윤여정 님의 증조할머니에 관한 얘기를 듣고
다시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오늘은 마침 한식이다. 조상의 산소에 올라가서 성묘를 하는 한식,
돌아가신 할머니에게는 삶의 기억을 함께 나눴던 살아있는 자를 위한 공간이 단 한 칸도 없어서, 오늘 이렇게 글을 남김으로써 성묘를 대신해 본다.
그러니까 이 글은 할머니를 기억하며 올리는 작은 기도와도 같다.

나의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나의 외할머니는 엄마가 어릴 때부터 지병으로 누워 계셨고 엄마가 결혼하기 전,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내가 외가-외가, 외할머니 이런 표현은 쓰고 싶지 않지만 방도가 없다-를 인식할 무렵에는 이미 할아버지에겐 새 배우자가 있었고, 내가 외할머니라고 알고 있었던 분이 실은 엄마의 엄마가 아니라는 건
그로부터 한참 후에나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엄마와 엄마의 형제들이 모두 다 크고 나서
할아버지의 새 아내가 된 분이기 때문에 엄마와 깊은 정을 나눈 분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할머니에 대한 엄마의 감정이 단순하지만은 않다. 할아버지의 배우자로서 오래 살아준 것에 대한 고마움,
엄마 자리를 차지한 것에 대한 약간의 미움,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연민 같은...

할머니는 오래전 자식을 낳지 못해 소박을 맞았다고 했다. 그리고 남자라면 으레 부인이 있어야 한다는
동네 할머니의 성화와 중신으로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새 아내로 맞이했다고 들었다.

할머니는 오래 병치레를 하셨고 나이가 들수록 오래 입원하는 일도 잦았다. 할아버지의 자식들이 이미 다 장성하고 나서 한 식구 안으로 들어오게 됐기 때문일까. 아픈 동안 할머니는 일찍이 의과대학에 시신 기증을 하기로 서명하셨다고 했다. 장례를 치르고 남은 거라고는 작은 화장대 하나와 그 안에 든 낡은 잡동사니뿐이었다. 삶의 모든 자취를 남긴 채 생을 떠나는 게 부담이었을까... 어렴풋이 생각해 볼 뿐이었다.

할머니가 나의 진짜 할머니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는 좀 쌀쌀맞게 군 것 같기도 했다. 알고 보니 할머니가 엄마의 엄마가 아니라는 생각에 홀로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고, 어렴풋이 엄마의 복잡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무례하게 굴지도 않았지만 조금은 살갑지 못했다는 생각에 가끔은 아직도 마음 한쪽이 쓰인다.

남겨둔 게 많지 않은 사람이라서일까. 삶이란 본디 치열하여 삶 앞에 죽음은 희미하기 때문일까. 할머니에 대해선 가끔 떠오르는 기억의 잔상이 전부다. 곧 이마저도 흐려지겠지... 왠지 모르겠지만 내게 피부가 참 백옥같이 곱다고 한 말은 아직도 어제같이 생생하게 들린다.

죽음 후에 남는 건 살아있는 동안 보냈던 시간의 조각,
남겨진 자들의 기억일 뿐이다. 나의 모든 게 사라지고, 내 것이었던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 게 된다.

장례식에 쓰일 영정 사진은 가족들이 고르고 고른 사진이거나 미리 잘 차려입고 찍어 둔 사진이다. 장례를 준비하면서 미리 찍어두었다던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남아 있는 사진은 젊은 시절 곱게 입고 찍은 사진 한 장, 사진 속 할머니는 정말 젊고 예뻤다.
아픔도 어느 서러움도 느껴지지 않는 어느 젊은 날의 순간, 할머니는 비록 늙고 병든 육신을 안고 떠나야 했지만 마지막 모습만은 젊고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바랐나 보다.

우리는 모두 태어나고 죽는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매일매일 의미가 있든 없든 하루를 꼬박 쉬지 않고 살아가지만 그 끝은 죽음뿐이고 남는 건 결국 기억뿐이다.

나는 그래서 어떻게 기억될 사람이냐고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 사람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작은 기도를 전한다. 오래도록 아파야 했던 삶을 잘 버티셨다고, 불편했을 손녀에게 전한 상냥한 말은 아직도 기억 속에 잘 남아있다고...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